2019년 9월부터 11월 16일까지 읽은 책

1.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by 고정욱/애플북스/212쪽
2. 제네시 일기/by 헨리 나우웬/최종훈 옮김/포이에마/312쪽
3. 예수님의 이름으로/헨리 나우웬/
4. 꽃心/
5. 제인에어

1.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
나. 황재석
180센티미터의 큰 덩치 하나로 폭력서클에 들어갔다.
메이커 운동화 하나 없어도
비싼 옷 하나 걸치지 않아도
아빠가 없는 것도
어두운 반지하방에서 사는 것도
그곳에서는 창피하지 않았다.
주먹만 있으면 모든 게 가능했다.

공부는 쥐뿔도 못하고, 죽도록 싸움만 하던 까칠한 황재석.
사회봉사를 하면서 180도 변신이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이 작품의 줄거리를 써 보는 것만으로도
비행 청소년들의 참담한 실상을 가늠할 수 있다.
탈출구가 없어서 주먹을 택하였던 황재석이 사회봉사라는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삶의 현장에서 이웃의 관심과 사랑의 힘을 받는다. 올바른 재생산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힘을 얻어 대학에 진학을 하고자 하는 삶의 목표를 갖게 된다. 해피엔딩이다.
나는 생각한다. 비행 청소년 문제와 사회가 않고 있는 온갖 범죄와 부조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사회의 구조적인 가난과 빈곤문제는 정부도 그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갑자기 얼마 전에 개봉되었던 영화 기생충이나 영화 조커가 떠오른다.
가난하다고 다 죄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들은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시기이고 고민과 갈등이 많은 때이고 나쁜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질 못한다. 
청소년들에 희망과 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본다. 

2. 제네시 일기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알게 된 영성가 헨리 나우웬의 삶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는 일기문을 읽게 되어서 매우 기뻤다.
몸담고 있던 학교를 떠나 헨리 나우웬은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들어가서 7개월 동안 살았고 그 곳에서 쓴 일기문이 제네시 일기다.
헨리 나우웬은 뛰어난 영성가이다. 하나님 앞에서  거짓 없이 솔직하고 담백해 보이는 그리고 진실해 보이는 그의 글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 시대의 뛰어난 영성가임에 틀림이 없으니까.

6월 낙원에 들어선 이방인
감사할 조건이 수두룩하다. 하나님이 손수 내 마음을 돌려주시고 거룩한 사랑으로 자유롭게 풀어주시길 기도해야 할 이유가 산더미 같다. 일곱 달, 너무 짧고, 너무 한시적이고, 너무 실험적이라는 느낌뿐이다. 하지만 오늘은 오순절, 크리스마스까지는 아직 멀다.

툭하면 험상궂게 돌변하는 날씨도 더 깊이 하나님을 갈망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얼마나 "유-우-익"한지 모른다고 했다. 거센 돌풍 앞에서 잔잔한 바람을, 먹구름 아래서 햇살을, 가뭄 속에서 빗줄기를 고대하노라면 저절로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게 될 뿐만 아니라 사소한 것 하나도 무심히 지나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노동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면밀히 점검해보는 게 좋겠다. 금주에 배운 게 있다면 내게는 기도나 독서, 찬양보다 노동이 더 중요한 묵상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수도원에 들어간다면 십중팔구는 기도하러 간다고 생각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이번 주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손을 쓰는 노동을 기도로 끌어올리는 법을 배워야 함을 깨달은 것 역시 엄연한 사실이다.

7월 그대는 이미 하나님의 영광
오늘 하루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일은 존 유드 원장과 나눈 면담이다. 요즘 우울하고, 피곤하며, 짜증스럽고,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 불만스럽고, 전반적으로 탈진상태에 빠진 느낌이라고 했다. 원장은 충분히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선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서 자신은 아침 일찍 일어나는 데 익숙해지기까지 1년이 걸렸다고 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어머니가 애틀랜타의 에베네저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다가 피살당했다. 암살범은 본래 남편을 죽일 작정이었다. 무려 40년 동안이나 그 교회에서 사역해온 마틴 루터 킹 시니어 생각을 나는 좀처럼 떨쳐버릴 수가 없다. 하나님은 진실로 그 믿음을 시험하고 계신다. 두 아들에 이어 이번에는 아내까지 잃었다. 그러고도 복수가 아니라 용서를 요구하면서 진실한 심령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잇는 그 어른은 성자임에 틀림없다.

요 몇 년 사이에 하나님 말씀을 선정적인 메시지로 변질시킬 가능성이 위험스러우리만큼 높아졌음을 실감한다. 서커스를 구경하는 관중들이 번쩍거리는 의상을 입은 곡예사가 허공을 가르며 공중제비를 도는 걸 넋 놓고 바라보듯, 크리스천들도 하나님 말씀을 이용해서 자신에게 시선을 끌어모으려 하는 설교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쉽다. 선동적인 설교자들은 감각을 자극할 뿐, 심령은 건드리지 않고 방치한다. 하나님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되기보다 '독특한 요소들'로 주께 가는 길을 가로막아버린다.

8월 조그만 십자가 표시 아래

성경의 이러한 측면을 곧잘 잊어버리곤 한다. 성경은 사실적인 책이며 인간 현실의 어느 한 구석도 회피하려 하지 않는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든 남성과 여성들의 삶과 생각, 개인사를 이야기한다. 이처럼 사실적인 속성을 늘 마음에 담아두는 게 좋다. 하나님은 평화롭고 조용한 곳뿐만 아니라 박해와 다툼, 분열과 갈등이 지배하는 자리에도 계신다. 실제로 주님은 장미꽃밭만을 약속하시지 않았다.

더러 기도제목을 알려주는 게 마치 뉴스 프로그램 비슷해질 때가 있다. 저녁기도 시간에 마르첼로 신부가 제안했다. "한국 대통령의 부인을 위해 기도합시다." 하지만 최근 신문을 본 식구가 없음을 알아치리고 얼른 덧붙였다. "얼마 전에 암살당했거든요."

오늘은 새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덫에 단단히 걸려들었다. 1974년에 편집한 제 15판이었다. 이제 막 도서관에 들어왔으니 다들 와서 새 식구를 구경하라는 쪽지가 게시판에 나붙었다. 잠깐만 살펴볼 작정이었는데 결국 30권을 다 훑어보느라 두 시간이나 머물렀다. 정말 게임을 하는 듯 즐거웠다. 마이크로피디어(짧은 글로 어휘를 설명한 일종의 소사전, 매크로피디어, 프로피디어와 함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구성한다.)에서 '그리스도'를 찾아보았다. "'나사렛 예수'를 보라"고 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이름이 다른 호칭들 가운데 하나가 돼버렸다. 색인에서는 예수회가 나사렛 예수보다 앞에 나온다.

9월 세상을 위한 기도

세상을 위해 기도하면 세상이 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의 필요를 위해 간구하면, 내 영혼은 폭이 넓어져서 모두를 끌어안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인도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런 체험의 한복판에는 그 연인이 내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깨달음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세상을 품에 안을 수 없지만 하나님은 그러시고도 남는다.

영성생활이 침체되어 있다는 건 곧 기도가 은혜라는 사실을 잊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영성생활의 열매는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점을 깊이 깨달은 크리스천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제아무리 심각한 상황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온 힘을 다해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을 힘닿는 데까지 단단히 모은다 해도, 하나님은 스스로 원하실 때만 말씀하신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면 누르고, 밀고, 당기는 짓이 다 부질없어 보인다. 가끔은 눈만 감으면 세상이 다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어린애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침묵, 그것은 내게 참으로 중요하다. 지난 한 주 동안, 쉴 새 없이 의논하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뉴헤이븐에 다녀오고, 꼭 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전화를 수없이 걸고 받았으며, 수도사들과도 적잖은 대화를 나눴다. 그러는 사이에 내 삶에서 침묵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들었다. 침묵이 사라져간 곳에 내면이 오염되었다는 감각이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는 어째서 자꾸 지저분하고, 찜찜하고, 불순한 느낌이 드는지 몰랐지만 시간이 갈수록 침묵의 결핍이 주원인이라는 걸 또렷이 알 수 있었다.
말을 통해서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애매한 감정들이 삶에 들어온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말을 하는 한 반드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한없이 고상한 토론을 벌인다 할지라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침투해서 분위기를 흐려놓는 듯하다. 이상하게도 말을 하다 보면 총기가 흐려지고 방어적이며 자기중심적이 된다. ~~~~~~~사도 야고보의 글은 과장이 아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약3:6~8)

10월 날로 담대한 우정

내일은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를 기념하는 축일이다. "내 삶에 진정으로 가난이 깃들 자리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가르침이 필요한 나로서는 특별히 주목해야 할 날이다. 통계적으로 보자면 세상에서 부유하게 사는 소수에 속한다. 필요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인다. 음식과 좋은 옷, 쾌적한 거주공간을 넉넉히 가지고 있으며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당장 달려와 도와줄 가족과 친구들에 둘러 싸여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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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측면에서 가난에 접근하고 싶다. 우선 소박하고 수수하게 생활하며, 둘째로 동료들보다 튀어 보이는 모습을 자제하며, 셋째로 상당한 시간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 일하는 데 쏟으며 가난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이들을 돕는 데 힘단흔 데까지 손을 보태고 싶다.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내도록 성 프란시스가 도와주면 좋겠다.

"비가 아름답지 않아요?" 수도사가 말했다. "어째서 다들 비를 피하려고만 할까요? 비에 푹 젖어야 할 순간에도 왜 햇살만을 원하는 걸까요? 자녀들이 은혜와 사랑에 풀 빠지길 하나님은 바라세요. 이처럼 다채로운 경로를 통해서 그분을 느끼고 점점 더 알아갈 수 있다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지금도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 가운데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시죠. 얼굴을 맞대고 하나님을 만난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상상해보세요."

11월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는 방법으로 묵상하는 법을 서서히 익혀나가야 한다. 어쩌면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전혀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님의 방식으로 그분을 발견할 때, 걱정근심을 모두 내려놓고 고통으로 끌려 들어가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없이 온전히 복종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진실로 기도를 들으신다." 캘리포니아에서 걸려온 뜻밖의 전화를 받은 뒤로 온종일 이런 즐거운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혀 지냈다.

세계 곳곳에서 굶주리고 있는 이들이 점점 깊이 내 의식을 파고든다. 여러 해 동안 그런 소식을 듣고 읽었지만 이제는 그 주제에 사로잡히다시피 했다. 기아가 70년대의 가장 큰 과제이며, 걱정거리고, 문제이고, 도전이라는 데는 의문의 어지가 없다. 60년대 초에는 민권운동이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고, 60년대 말에는 베트남 전쟁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제는 배고픔, 굶주림, 기아, 죽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사안이 너무나 거대하고 압도적이어서 거기에 함축된 의미를 단번에 파악하기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수백만에 이르는 이들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식량 부족으로 날마다 수천 명씩 목숨을 잃는다. 일주일에 세 번씩 대략 1만 5천 덩어리의 빵을 오븐에서 구워내고 예년에 비해 훨씬 많은 밀과 옥수수를 거둬들인 수도원에 앉아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한층 더 기가 막힌다.

12월 미리 누리는 기쁨